터진 입안을 혀로 슬쩍 훑으면 피 맛이 났다. 어쩌면 어딘가가 부러졌는지도 모르겠다. 온 몸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아파 가장 심각한 곳 하나를 고르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도중까지는 멱살을 잡혀 맞았던 기억도 있고 골프채가 마구 휘둘러지는 동안 머리와 목을 보호했던 것까지도 어떻게든 생각이 나는데 어쩌다 바닥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지까지는 아무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얼 하다 이렇게까지 대들었더라? 시답잖은 이유일 거다. 이런 짓에 염증이 난다고 말했던가. 조금 더 불손하게 굴었던 것도 같다. 많고 많은 누군가를 폭행할 이유 중에서 무례함이 있던가. 예의를 각인시키는 데에만은 확실히 성공했나 보다. 이번에는 두 번 다시 덤빌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닥에서 정신을 놓으면 다음 날 두 배로 후유증에 시달린다. 폭력에 익숙했으므로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누군가를 폭행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고 반대로 어떻게 맞아야 덜 아프게 맞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빠삭했다. 몸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렸다. 객관적으로 추운 날이 아님에도 바닥에 엎어진 몸에 한기가 돈다. 어깨가 나갔나? 어쩌면 팔이 부러졌는지도 모르겠다. 땅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최대한 오래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얻어맞았는데도 상태가 이런 것을 보니 폭력에 생판 문외한인 상대였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황룡회의 보스가 감히 자신에게 대든 사람을 살려 놓았다면 그것은 손속에 자비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친자식이라면? 하나뿐인 혈육이라면? 자식 교육이 엄하시다는 이야기로 설명하기에도 너무 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이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이 정도로 두들겨 맞은 것은 중학생 때였다. 여럿이 상대였고 야구 방망이 따위의 무기들도 있었다. 상대는 이 년 위의 상급생들이었다. 체육실 창고에서 찢어진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일 주일 뒤에 보자는 허세 아닌 허세를 부렸던 적이 있었다. 두들겨 맞은 타박상과 붓기가 가라앉을 즈음 해서 똑같이 갚아 주었고, 한 달 후에 한 번 더 붙었다. 세 번을 연달아 이기고서야 도전을 멈췄었다.
이 짓은 도통 안 끝난다. 이시카와 나가토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지독한 권태를 느꼈다. 그에게 폭력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들겨 맞은 것도 사실이었고 친아비에게 폭행당한 것 역시 사실이었으나 새삼스럽게 그것 때문에 뒷세계에 염증이 난 것은 아니다. 처음 맞아 본 것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처음 맞는 것도 아니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는 했으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어쨌건 이십여 년 뒤 이시카와 토우는 늙고 노쇠하게 될 것이므로. 그러나 그냥 이 상황과 연관된 모든 것이 참을 수 없을 만치 혐오스러웠다. 자식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도, 그 아버지를 언젠가 두들겨 패야 할 자식도.
폭력으로 굴종을 얻어내는 것은 그가 살아온 세계의 법칙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조금 알게 될 즈음부터 늘 그랬다. 어린아이 하나를 꺾어 황룡회 보스의 외동아들을 굴복시켰다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싶은 사람들이 어린 그에게 덤볐고, 그의 아버지에게 굴종을 맹세한 사람들이 그를 대신해 싸웠다. 잔뜩 얻어터져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어도 그들은 이시카와 토우의 권위에 굴복해 이시카와 나가토를 위해 피흘렸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지. 정녕 사람을 폭력으로 온전히 꺾어 복종시킬 수 있다면 왜 반대파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도무지 뿌리뽑힐 낌새를 보이지 않는지. 폭력에 의해 한 명을 꺾는다 해도 그렇다면 요리카와 시의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지난한 폭행을 가해야 하는지.
그런 모든 면이 지독히도 권태로웠다. 염증이 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먹질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는 것이라고는 사람의 복부를 여러 번 빠르게 가격해 싸울 수 없게끔 만드는 열 가지 방법뿐인 이시카와 나가토는 탈출을 꿈꾼다. 끊이지 않는 시비에 응수해 싸우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확실히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른 삶의 방식을 한 번도 접해 본 바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단지 지금과 같지 않은, 어딘가 다른 삶을 원했다. 황룡회의 후계자이자 폭력 써클의 일원 이시카와가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 나가토로 살 수만 있으면 좋았다.
비식거리는 실소가 샜다. 제 피가 배어 부러진 몽둥이 조각 위에 드러누운 신세인데, 무슨 탈출을 또 꿈꾸는지. 쿨럭거리며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재떨이가 엎어져 진즉 더러워진 바닥이니 이 정도는 모른 척 넘어가 줄 것이라는 호기로운 배짱이다. 하하, 아, 하하하하⋯⋯. 설마 죽이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정말 죽을까 봐 더럭 겁이 난다. 다음 번에 대들면 정말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최소한 한 쪽이 땅에 묻히기 전까지는 이 격차를 극복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옆으로 쓰러진 몸을 둥글게 만다. 바닥을 짚으면 팔을 타고 찌릿한 고통이 엄습한다. 체중을 조금씩 조금씩 옮겨 실으며 일어났다. 범죄 조직의 중심부로 구급차를 부를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제 발로 밖으로 걸어 나가기는 해야 한다.
자잘한 재떨이 파편들이 낭자한 바닥 위에 이마를 처박으며 겨우 무릎을 두 쪽 다 바닥에 댄다. 그리고 상체를 힘겹게 일으키고 두 발로 바닥을 딛는다. 갈비뼈 몇 쪽이 부러진 것 같았지만 파편이 내장이나 폐를 찌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여간 폭력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선다. 두 시간 만이던가? 얻어터진 시간까지 감안하면 세 시간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혹시 끝장을 내러 왔나, 본능적인 공포감에 몸이 굳는다. 이성과는 별개의 감정이다. 생존 본능에 가깝다. 압도적인 포식자 앞에서 겁에 질리는 것은.
무어라 외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심히 열린다. 양복을 걸친 사내 여럿이 나가토를 부축한다. 한 놈은 병원에 전화를 거는 듯 하다. 뭐라고 말하는 것은 같은데 드문드문 소리가 끊어져 들린다. 아, 젠장. 어쩐지 계속 어지럽더라니. 확실히 한 쪽 고막은 터졌다. 의사보다도 더 정확하게 상태를 짚어낼 만큼 폭력에 익숙한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