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인형 PC4 긍지대결
  키나님

 ※ Dx2 시나리오 『눈의 인형』 스포일러 포함

 

 

칸자키 타미오는 칸자키 타카아키의 첫 번째 실패작을 바라보았다. 슬픔의 감정도 기쁨의 감정도 비쳐 보이지 않는 얼굴 거슬리기 짝이 없다 느끼고 마는 건, 그가 아직 칸자키 타카아키의 주박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무엇보다 확실한 증명일지 모른다.

타미오의 유년은 칸자키에서 시작되어 타카아키로 귀결되었다. 유일한 가족, 부모, 믿고 따랐던 이. 그런 단어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도 없을 만치, 벗어날 수 없는 악몽처럼, 미야사카 타미오의 생이란 타카아키의 손으로 빚어져 오롯이 그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타카아키의 몰락 후로도 타미오의 생 송두리째 뒤바뀌는 일은 없고 그와 함께해온 과거 지워질 일은 더욱이나 없었으므로, 그는 여전히 칸자키 타미오였고 칸자키 타카아키의 가족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노사와 나기의 존재란… 하나의 배신과도 같았다. 그가 기억하는, 인간이었던 칸자키 타카아키와의 생조차 거짓이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 타미오는 타카아키를 증오하는 만큼이나 자신이 타카아키의 첫 번째 가족이란 사실도 의심한 적 없던 탓에, 더는 실망할 것조차 없다 여겼던 과거의 체념 무색하게도 일렁이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 칸자키 타미오는 타카아키의 첫 번째 실패작을 산산이 무너트리고 싶었다. 충동과도 같은 바람 속엔 그의 후계자가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단 문장 하나만으론 전부 담아내지 못할 음습한 질투심과 열등감이 산재해 있었고, 그것은 타카아키에게 버림받았단 사실만은 같음에도 악몽 한 자락 지니지 않은 상대의 삶에서 기원했다.

상대가 악몽 지니지 않았다면 그의 손으로 심어주면 될 일이다. 시노사와 나기가 칸자키 타카아키의 첫 번째 작품이며 그의 유지 가장 짙게 이어받았을 존재라면, 그조차 칸자키 타미오의 손으로 지워버리면 될 일이었다. 얄팍한 논리는 어떠한 감정과 망상 더해지는 순간 불변의 진리로 변모하며, 시노사와 나기는 그것을 굳이 무너트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야, 과거의 타카아키 기억하며 또 다른 칸자키 거슬린다 여기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나기는 타카아키의 마지막 뒷모습을 기억했다. 하나의 저주처럼, 잊을 수 없었다. 타카아키가 야망과 반란 위하여 그를 버린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기의 방향 돌아보지도 않고서 떠나갔던 타카아키가 다음 순간 붙잡은 것이 타미오였다는 사실 곱씹다 보면, 결국 시노사와 나기는 타카아키의 실패작이었으며 미야사카 타미오는 그 이상의 가능성 품은 작품이었단 결론만을 쥐게 되어버려서. 

그는… 하나의 증명을 받고 싶었다. 하고 싶었다. 타미오가 정말 나기 내버릴 정도로 우수한 작품이라면 그 증거를 보여주길 바랐다. 칸자키 타카아키의 첫 번째 작품은 자신이며 그만이 그러한 존재가 될 자격 쥐었으므로, 그를 버리고서 떠났던 타카아키의 과거는 잘못된 것이었단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다. 이성적으로 정명한 사고가 가리키는 비합리는 이제 와선 새로운 것조차 되지 못했다……. 적어도 타카아키 향해 품은 망상에 대해서만은 두 사람이 생의 교집합 지녔던 탓이다.


“다, 당신이 칸자키의 첫 번째 작품이라면……, 제 손으로 지워버리고 말 거예요. 그 사람의 흔적 같은 건, 더는 필요 없으니까…….”

“우연이네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바라는 것 명백하고 생 교차한 과거의 어느 순간 분명했으므로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일렁이는 백색은 누군가의 악몽인지, 미궁의 밑바닥에 내리깔린 안개인지 구분조차 불가능한 형상 띠고 있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사인은 없었다. 시노사와 나기의 시선에 칸자키 타미오의 모습이 담기면, 흑색 눈동자는 한순간에 상대의 밑바닥 판별해내며 언제나처럼 그가 승리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알려주었다. 상대 감정하는 눈길은 퍽 소름 끼치는 감각 불러일으키던 탓에, 칸자키 타미오는 급히 하나의 성분 빚어 들이마셨다. 인위적인 변모로 한계까지 가속된 반사신경이 타미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이 상대 굴복시켜 제거할 때라고. 

타미오는 그 목소리를 거부하지 않았다. 칸자키 타미오를 중심으로 농도 짙은 화학 물질이 빚어졌다. 공포와 안도, 마비와 안온. 가장 깊은 곳의 인간성 자극하는 손길은 상대로 하여금 그 거스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폭력적인 힘을 지녔다. 기껏해야 수 미터의 거리 앞두고서 흘러나간 물질은 단순간에 나기의 발목 붙잡았다. 나기의 시계視界에 과거와도 망상과도 구분되지 않는 잔향이 수 개나 비쳤다. 더는 가닿을 수 없는 어느 순간의 풍경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던 환각은, 왜곡과 비틀림 품었음에도 망각 허락되지 않은 이의 뇌가 빚어낸 탓에 더욱이나 사실적이었다. 시노사와 나기는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어, 칸자키 타미오를 바라보았다. 그 낯은 웃는 듯, 무표정한 듯…….


“당신을 파악하는 데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시노사와 나기는 감정적인 인간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머리에 덧씌워진 서클릿은 나기로 하여금 감정 배제된 삶 살아가길 강요했고, 노이만이라는 신드롬은 유산의 명령 이행하기엔 무엇보다도 적합한 성질 지녔다. 이성과 논리로 이루어진 생의 형태는 칸자키 타카아키와의 과거 끝없이 반추했을 때도, 충동이 불러일으킨 망상에 집어삼켜졌을 때도, 십일 년의 시간 지나 타카아키가 전화 걸어 왔을 때도 뒤흔들리지 못했다. 

그러니 그것이 어떤 종류의… 현실성 품고서 그의 발치까지 다가왔다 한들, 나기는 잠시간의 향수에 젖었을지언정 그것에 수몰되진 않았다. 완연한 통제하에 두었을 사지에서 마비의 전조 인식하는 순간 유일한 가족에게 잠시간 가닿았던 눈길은 곧바로 이양되었다. “서둘러야겠는걸요.” 홀스터에서 총 뽑아 드는 것과 동시에 흑색의 시선이 그 자신이 그린 타미오의 환상을 좇았다. 상대 낱낱이 파헤치기 위한 목적 지닌 일련의 행위는 하나의 해체라 불려 마땅했다.

지휘관이란 곧 전장을 지배하여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자. 무기 집어 든 지금에서도 그 대명제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상대에게 환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인지한 타미오가 급히 다음의 비수 준비하나, 타미오가 살포한 화약(정확히는 강산성의 성질 지녀 터져나가는 순간 사위를 녹여버릴 물질)이 나기에게 닿는 것보다도 나기가 타미오 완전히 손 아래 두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자리에 선 채 상대 판별하던 이가 한순간에 땅 딛고 도약하니, 나기의 팔 언저리 스친 물질이 집어삼킬 수 있던 건 나기의 손가락 몇이 전부였다. 타미오의 독으로 인해 감각 잃어가는 사지의 가동 범위와, 최소한의 상실로 공격 흘려낼 최적의 경로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는 언제나처럼 나기를 배신하지 않았다.


“미야사카 씨도 알고 계시잖아요.”

“…….”

“미야사카 씨는 저를 넘을 수 없고, 칸자키 씨가 저를 버리고 당신을 택한 것은 하나의… 오판에 불과했다는 걸.”

“그 입, 다물어…….”


적색 눈동자가 검게 일렁였다. 그것은 굳은 믿음을 닮았다. 시노사와 나기는 역시 칸자키 타카아키의 후계자이며 그가 세상에 남겨둔 가장 뚜렷한 흔적이었다. 결국, 그 또한 타카아키에게 버림받았을 뿐인 주제에……. 그는 나기의 움직임 아래 깔린 계산 전부 이해하진 못하였으나 작금의 그가 무얼 하려는 것인지만은 알았다. 다음의 발산은 끓어오르는 감정의 갈피 붙잡지 못한 이의 화풀이에 가까웠다. 고작 두 걸음을 남겨두고 차게 식은 총구가 타미오 향해 들이밀어 지는 것과, 강렬한 향 나기에게 가닿은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깊은 상처 부재함에도 뇌리에 직접 내리꽂히는 통증만은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나기조차 흔들릴 수밖엔 없는 분명한 이변. 나기의 낯에 처음으로 금이 가며 타미오 향해 겨누어졌던 총구의 궤적이 비틀렸다. 탕! 먹먹한 총성과 함께 피륙이 튀나 결손된 부위는 옆구리의 표피 조금이 전부였다. 환통의 향이 안겨주는 틈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 찰나의 틈이면, 충분했다. 나기의 손가락 잡아먹는 것에 그쳤던 물질이 다시금 타미오를 중심으로 발산되며, 직후. 폭음이 울렸다.

인간의 가죽이 녹아내리는 냄새와 짙은 화학 물질의 향이 매캐한 연기와 함께 뒤섞여 시야를 가렸다. 칸자키 타미오는 겨우 이런 것으로 상대 완전히 무릎 꿇릴 순 없을 거란 사실과 지금이라면 나기조차도 빈틈 보일 수밖엔 없을 것이란 사실을 동시에 직감했다. 상대의 회복 얌전히 기다려줄 생각 따윈 없었으므로, 타미오는 상대의 숨 완전히 끊어내기 위하여 자신이 해야 하는 일 가늠하여… 즉시 시행하였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상대 집어삼킬 수 없다면 인간인 이상 떨쳐낼 수 없는 악몽 안겨주면 될 일이었다. 얄팍하게 표현하자면 상대에게 절대적인 공포 쥐여줄, 뇌를 파고들어 신경 체계 망가트리는 마약성 물질이 연기 아래 스며들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것 부서트리는 일은 우습기 짝이 없을 만치 쉽다는 사실을 타미오는 지난 수년간의 경험 통해 알았다. 음울한 낯이 근원 모를 복수심과 살의 품고는 번들거렸다.

타미오는 나기의 방향으로 한 걸음 발 디뎠다. 융해된 근육 사이 뼈대 드러난 팔에 타미오의 손이 가닿았다. 질척이는 것이 손끝에 묻어나며, 손아귀에 힘 더하는 것과 동시에… “미야사카 씨가 이렇게 움직일 거란 사실도……” 타미오의 시야가 크게 뒤흔들렸다. “알고 있었어요.” 턱 어귀에서 시작되어 뇌 전체를 뒤흔드는 고통은 한 박자 뒤에 밀려들어 왔다. 무미건조한 흑색 시선에는 타미오의 모습이 여전히, 비치고 있었다. 

타미오는 무심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땅 딛고 바로 섰음에도 시야가 속절없이 나부끼며 사고의 흐름이 온전치 않았다. 지각은 그대로인데도 두뇌가 그것을 처리하지 못하는… 기이한 감각이 사지를 지배했다. 타미오가 상대의 행동 이해한 것은 다음의 발포음 울린 후였다. 비틀거리던 다리가 꺾이며 가슴께에서 울컥 피가 솟아 타미오의 발치를 적셨다. 예고 없이 시작된 싸움의 단락은 불과 한순간에 결정되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나기의 쪽이었음에도, 온몸이 해져 붉음 산재한 상황에서조차 소년의 백색은 퇴색되지 않았다. 타미오는 그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반전된 상황, 현실. 나기가 눅눅하게 추락하는 핏물 털어내며 총 붙잡은 손 바로 했다. 시노사와 나기가 판단컨대, 결손 적지 않다 한들 이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출혈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사지의 감각은 좀처럼 돌아올 기미 보이지 않고 강제로 불러일으켜진 공포는 여태 그의 발목 붙잡고 있었다. 상대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 독이 완전히 그의 몸 집어삼켰더라면, 노이만의 권능으로도 통제 불가능할 만치 신체가 악몽에 잠식되었다면. 지금 무릎 꿇은 것은 타미오가 아닌 나기의 쪽이었을 터였다. ‘이래서 정예를 상대하는 건 번거롭다니까…….’ 비일상의 세계에서 타미오가 지닌 무게 되짚듯, 나기는 상대의 생 저울에 올려두곤 무언가를 가늠해 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예지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낱 망상일 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상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공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타미오를 중심으로 흘러나온 독이 주변 공기를 좀먹기 시작했다. 호흡기와 녹아내린 살갗 통해 나기를 속절없이 침식하는 독은 그의 생만은 이곳에서 끝맺곤 말겠다는 분명한 의지 품은 채였다. 비틀대던 몸은 간신히 제 자리를 찾았다. 무언갈 고민하려던 행위 자체가 사치였단 사실 깨닫기까진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망설임은 곧 패배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나기는 곧장 타미오 향해 총을 겨눴다. 이번의 과녁은 머리. 아무리 오버드라도 죽음 피할 수 없을 급소였다.


“미야사카 씨는 타인에게 고립과 악몽을 안겨주시죠. 아쉽게 됐어요. 저는 악몽에 파묻힐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거든요.”

“당, 신은, 정말…, 칸자키 타카아키를 닮으려고 애쓰는구나…….”


미야사카 타미오의 생 향한 얄팍한 동정은 불필요했다. 독 퍼져가고 있었음에도 상대의 유언 끝까지 들어 기억한 것이 그가 타미오에게 보일 수 있던 최대한의 예우였다. 나기를 뒤로하고 떠나가던 칸자키 타카아키의 뒷모습 마지막으로 떠올린 나기는 떨리는 손 겹쳐 쥐곤 느리게 웃었다. “당신은…… 끝까지 미야사카 타미오였네요.” 칸자키 타미오가 아닌 미야사카 타미오, 문장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스노우 화이트"도 "나이트메어"도 전부 그의 손에 꺾였다. 이곳에 선 것은 첫 번째의 실패작인 시노사와 나기뿐이었다. 그러므로 나기를 버린 후 타카아키가 살아간 삶은 전부 잘못되었다……. 선명한 확신은 하나의 자기 위안을 닮아 있었다. 우습게도.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고 망자는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과거 어떻게 규정지어진다 한들 무엇도 변치 않았고, 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총성이 울리고, 사방으로 피륙이 튀었다. 고립된 악몽의 마지막 알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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